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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계곡에서 물을 친구처럼 대하던 한 아이는, 성인이 되어 배낭여행 중 우연히 마주한 홍해에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찾았다. 듣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물속에서는 누구나 같은 방식으로 호흡하고, 같은 방식으로 자유를 경험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그는 세계 최초의 농인 프리다이빙 강사가 되었다. 이제 그는 바다에서 얻은 용기와 자유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며, 누구나 물속에서 안전하게 연결될 수 있는 배리어프리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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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통해 다시 태어나다

물과의 인연은 어릴 때부터 시작됐다. 시골에서 자란 그는 계곡과 폭포를 놀이터 삼아 자연스럽게 물을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수영학원을 다니고 싶다는 바람은 형편 때문에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잊고 지냈던 ‘물’에 대한 감각은 성인이 되어 떠난 세계 여행 중, 이집트 홍해에서 다시 깨어났다. 처음 숨을 참고 내려간 그 순간, 그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을 느꼈다. “오로지 제 안쪽만 보이는 시간이었어요.”
바닷속에서 수면 위를 올려다보면 빛줄기가 물속으로 내려오고, 몸은 무중력에 가까워진다. 그는 그 감각을 “프리다이빙을 하지 않으면 절대 느낄 수 없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세계 곳곳의 바다를 경험한 여행은 그의 언어와 감각을 풍부하게 만들었고, 결국 세계 최초 농인 프리다이빙 강사라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 “인생에는 분명한 터닝포인트가 있다”는 것을 그는 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함께 잠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것

프리다이빙에는 LMC(신경조절운동장애)나 블랙아웃처럼 한순간의 판단이 생사를 가를 수 있는 긴급 상황이 존재한다. 하지만 기존 구조 방식은 대부분 ‘말’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있어 농인에게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이 문제를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꼈고, 결국 비구두 방식만으로 명확한 구조 신호를 전달할 수 있도록 ‘농식 레스큐’를 직접 고안했다. 말없이도 정확하게, 혼란 속에서도 동일한 절차를 따를 수 있는 구조 체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고민은 자연스럽게 농인 프리다이버들의 커뮤니티 ‘데프리다’로 이어졌다. 농인 학생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공동체는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의 정보가 모이고, 자격증을 가진 안전 버디를 연결하며, 강사 없이도 안전하게 연습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공간이 되었다. 그가 운영하는 교육과 투어 역시 이 커뮤니티와 함께 성장하며 농인과 청인이 함께 잠수할 수 있는 환경을 확장해왔다.
그는 청인 수강생에게도 수중 수어를 가르친다. 처음에는 손짓으로만 의사를 전달하는 방식이 다소 낯설어하지만, 막상 물속에서 사용해보면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이렇게 명확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모두 놀라곤 한다. 그는 이 순간들이야말로 진짜 ‘배리어프리’라고 말한다. 누군가를 배려해야 한다는 시선이 아니라, 서로가 같은 조건으로 함께 잠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에게 배리어프리는 제도나 장치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방식에 대한 신념이다.
그가 잊지 못하는 수강생도 있다. 평생 물이 무서워 바다에 발조차 담가보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얼굴을 물에 대는 것조차 어려워했지만, 천천히 그를 믿고 따라오면서 결국 10미터까지 내려갔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그는 오히려 자신이 더 강해졌다고 말한다. 공포를 이겨내는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바다는 그 모든 속도를 받아준다. 그리고 그는 그 과정 하나하나가 결국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더 많은 사람들이 물속의 자유를 느끼길

물속은 그에게 ‘완전한 자유’의 공간이다.
“몸이 가벼워지고 잡념이 사라져요. 연결감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그래서 제가 프리다이빙을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는 앞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다양화하고, 국제 교류를 통해 세계 농인 프리다이버 네트워크를 확장할 계획이다. 더 많은 농인 강사를 양성하고,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체계를 정착시키는 것도 목표다. “해외 농인 강사들과도 협력해서 수중 커뮤니케이션을 표준화하고 싶어요. 모두가 같은 언어로 잠수할 수 있도록.” 프리다이빙을 통해 얻는 가장 큰 가치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힘, 그리고 공포를 넘어서는 용기요.”
지구의 70%가 바다인 만큼, 여행의 가능성도, 삶의 가능성도 넓어진다는 믿음이 그의 미소에 담겨 있었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 그는 늘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습니다. 언젠가는 때가 옵니다.”
바다는 언제나, 준비된 마음에게 길을 열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