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츠 공감

유튜브 요약본,
왜 봐?

글. 김엘진

바쁜 현대인들은 이야기도 요약본으로 본다. 요약본은 긴 영상을 보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주기 때문. 그런데 요약본을 바로 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

  •  ‘몰아보기’로 검색하면 뜨는 드라마 요약 영상들

    <‘몰아보기’로 검색하면 뜨는 드라마 요약 영상들>

  • ‘résumé film’으로 검색한 프랑스의 영화 요약 영상들

    <‘résumé film’으로 검색한 프랑스의 영화 요약 영상들>

  • “당신의 시간을 절약해드립니다”

  • 최근 시간과 가성비를 합친 ‘시성비’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바쁘다바빠 현대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시성비를 만족시키기 위한 요약본 콘텐츠를 더 많이 소비한다. 유튜브 검색창에 드라마나 영화 제목을 검색하면 ‘결말까지’, ‘줄거리’ 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유튜브에서 시작된 이런 요약본 콘텐츠는 공중파 방송에도 진출했으며, 밀리의서재 등 독서 콘텐츠 시장까지 파고들었다. 밀리의서재는 ‘요약본 오디오클립’과 ‘챗북’ 등을 통해 길고 어려운 이야기를 짧고 쉽게 전달해준다며 바쁜 현대인들을 유혹하고 있다. 요약 콘텐츠는 우리나라만의 트렌드가 아니다. 영어권에서는 ‘recap’, ‘summary’, 프랑스에서는 ‘résumé’, 일본에서는 ‘ドラマまとめ’ 등 관련 키워드만 치면 수많은 요약본들이 준비돼 있다.
    아마 현대인 중에 OTT 서비스를 하나도 이용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여러 개의 OTT 서비스를 구독하고 있는 이들도 많다. 그만큼 우리는 많은 영상과 많은 이야기에 노출 돼 있다. 반면 원하는 콘텐츠를 다 소비할 만큼 충분한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또한, OTT 세상의 수많은 콘텐츠 중 내 취향에 꼭 맞는 것을 고르는 일도 또 하나의 부담이다. 긴 콘텐츠를 골랐다가 실패하는 일도 두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요약본을 본다. 요약본은 긴 영상에 소비해야 하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주고, 새로운 콘텐츠를 짧은 시간 동안 소개해주고, 그리고 다양한 콘텐츠를 터치 몇 번에 손쉽게 비교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 줄거리가 이야기 자체일까?

  • 그런데 요약본을 본 것으로 우리는 이야기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애초에 영상이 원래 길이로 만들어진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을 1/10, 혹은 1/100로 짧게 압축하면 필연적으로 누락·왜곡되는 정보가 생긴다.
    만약 요약본의 제작자가 줄거리 요약을 완벽하게 해냈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도 줄거리는 그 이야기라고 할수 없다. 영화나 드라마는 종합예술에 속한다. 단 하나의 프레임에도 무수한 이야기(문장)가 담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요약 줄거리로는 설명될 수 없는 카메라의 움직임, 음향, 인물의 눈빛과 표정 하나하나, 배경 속 소품에 조차 정보는 들어있다. 다큐멘터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짧은 요약본 안에는 포함되지 못한, 그렇지만 중요한 정보를 우리는 놓칠 수밖에 없다.
    또 한 가지, 우리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본 수많은 이야기의 줄거리를 모두 기억하고 있을까? 답은 물론 ‘그렇지 않다’이다. 불과 얼마 전에 본 이야기 줄거리도 완벽히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어차피 잊어버릴 이야기를 보는 것일까? 그 이야기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것일까? 지금까지 접한 수많은 이야기는 의미가 없는 것일까?

  • 우리는 왜 이야기를 볼까?

  • 우리가 영상을 보는 동안, 혹은 책을 읽는 동안 우리의 뇌는 단순히 그 내용을 요약하는 데에만 쓰이지 않는다. 콘텐츠를 소화하는 과정에서 뇌는 수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느끼게 된다. 그것이 콘텐츠의 의미이자 우리가 이야기를 보는 이유다. 그렇게 감흥을 받은 순간순간들이 정서를 형성하고, 어떤 변화를 가져온다. 정확히 어떤 순간이 어떤 결과를 창출할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순간들이 모여 나를 이루는 무언가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
    그러나 요약본을 보며 그러한 순간을 누리기는 쉽지 않다. 요약본은 원본 영상이 담고 있는 표현, 분위기, 디테일을 전달할 수 없다.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하는 해석하는 즐거움을 몇 마디의 짧은 문장으로 앗아가기도 한다. 원본에서라면 느낄 수 있었던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줄거리만 소비하게 된다. 그리고 빠르게 줄거리만 소비하는 데 익숙해지면 점차 몰입력을 잃어가게 될 것이다.
    최근 나온 드라마나 영화의 줄거리를 꿰고 있는 일은 어쩌면 사회생활에서 스몰토크를 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깊은 이야기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요약본은 쉽게 줄거리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줄 뿐 원본을 보는 것을 대체할 수는 없다.
    어쩌면 우리는 수많은 요약본에 시간을 쓰며 정말로 내 인생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도 모르는 진짜 경험을 놓치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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