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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을 인정받다

2024년 ‘올해의 장애인상’을 수상한 이들은 나 외에 두 분이 더 있었다. 발달장애인으로 나눔챔버오케스트라 클라리넷 연주자로 활동해 온 김유경 선생과 지체장애인 권리를 실천해온 황재연 서울시지체장애인협회장이다. 그해 4월, 우리는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 그랜드볼룸에서 제44회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 참여해 한덕수 국무총리가 수여하는 상장을 받았다. 나로서는 뜻밖의 수상이었다. 정신장애인 권익 옹호 언론인 <마인드포스트>를 창간해 약 6년간 많은 기사들을 기록해 왔는데 그 성과를 주목한 지인들이 나를 장애인상 후보로 추천한 것이다. 나는 후보 선정에 필요한 개인 신상 자료 등을 심사위원회에 넘겼고 이후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리고 보름쯤 지난 후에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상을 받는 건 개인적으로 좋은 일이다. 나도 그랬다. 다만 이 상을 나에게 시상한 이유는 정신장애인의 권익 옹호에 더 매진하라는 의미이기에 옷깃을 여미는 심정이었다고 할까. 그날, 그랜드볼룸 홀의 각 테이블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그들은 수상자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김유경 선생과 황재연 협회장은 발달장애와 지체장애 분야에서 서사를 써 온 분들이었다. 그들의 수상은 곧 발달장애인과 지체장애인들의 하나의 롤 모델이 될 것이다. 쑥스럽지만 나 역시 조금은 그렇지 않을까.
중증 정신장애를 갖고 있는 나는 발병 이후 긴 시간을 절망 속을 헤맸었다. 누구나 그렇지 않겠냐마는 ‘왜 하필 이런 질병을 안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라는 한탄은 나뿐만 아니라 정신장애인 모두가 질병 초기에 다 겪어야 했던 좌절감이리라. 특히나 다른 신체 유형의 장애보다 정신장애는 사회적인 낙인과편견이 더 심하다. 사회적으로 눈에 띄지 않는 존재이다가도 정신질환자로 추정되는 이가 사건사고를 일으키면 사회는 우리를 소환해 더 강한 비판과 비난을 가한다. 정신장애인은 사회의 외곽에서 떠돌 뿐, 직접적으로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오지 못했다.

우리의 목소리

신문을 만들고 우리가 주창한 건, 우리의 목소리였다. 아무도 마이크를 대주지 않았던 정신장애인의 삶의 서사가 그렇게 시작됐다. 열 차례나 정신병원을 전전했던 정신장애인도, 환청을 들으며 살아가는 정신장애인도, 조현병이라는 질환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따돌림을 당하던 정신장애인도,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임대주택에 살며 하루하루를 견디는 정신장애인도, 심리적 어려움이 덮치면 어떻게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정신장애인도, 그들은 우리 신문에 자신들의 서사를 다룬 글을 보내왔다. 우리는 다만 그들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과 지면을 내주었을 뿐인데 그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장애와의 만남과 치유의 긴 서사가 됐다. 그 만남과 이야기는 정신장애인들이 가지는 지극한 동병상련이었고 그 주변에서 지지하는 가족에게는 또 하나의 치유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먼저 회복된 정신장애인들은 ‘상처 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가 됐다. 상처 입은 이만이 타자의 고통을 치유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상처 입었다는 경험은 회복을 향해 가는 이들에게는 공감과 용기의 이야기였다. 나는 정신장애인 당사자, 정신과 의사, 정신건강사회복지사, 사회복지학 교수, 광역정신건강센터장, 정신장애인 가족, 자살예방센터장, 신학과 교수 등 많은 이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기억에 나는 인터뷰이 중에는 90세에 가까워진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있다. 그분은 한 사람의 정신건강 척도는 ‘남의 말을 듣는가’와 ‘타인을 사랑하는 능력’에 있다고 했다. 특히 입원한 당사자가 언제쯤 퇴원해야 하는가의 질문에는 “그의 침대맡에 작은 화분을 놓아두세요. 이후에 그가 화분에 물을 주고 관심을 가지게 되면 퇴원해도 괜찮다”라고 말했다. 이는 자아가 자아의 고통을 넘어 타자의 고통을 눈여겨보기 시작할 때, 즉 나 이외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는 순간이 곧 퇴원의 시간이라는 의미다. 그분은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해야한다"라고 말하며 “인간은 완벽할 수 없는 존재이니 굳이 완벽해지려고 노력하지 말라"라고 조언했다. 인간이 가지는 유한성과 생의 한계에 겸허해지라는 소리였다. 여성 정신장애인 A 씨는 한국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신장애인은 무용하고 불필요한 존재로 낙인찍히는 존재이지만, 그 쓸모없는 존재들이 공통된 목소리를 낼 때 사회가 변할 수 있다고 의견을 냈다. 고통 앞에서도 그녀는 개인의 해탈이 아닌 사회의 집단적이고 총체적인 구원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러면서 보이지 않았던 문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모든 이야기를 신문에 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우리 사회를 설득하기 위한 장문의 기사를 하나씩 올렸다. 그리고, 세상은 조금씩 변한다는 진실을 알게 됐다.
정신장애인들은 자신들의 모임에 참여해 적극적으로 자기 질환의 특성을 알렸고 함께 모인 이들로부터 피드백을 얻고 질환을 커밍아웃하는 용기에 박수를 받았다. 이들은 치유란 약만 잘 먹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회적 활동을 해나가는 동안 이뤄진다고 깨닫기 시작했다. 한 여성 정신장애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긴 어둠 속에 있었지만 지금은 동료들과 함께 더 나은 삶을 가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그 말이 참 고마웠다. 온전한 회복으로의 여정에서 이들을 동지로 만나고 서로의 일상을 조언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지난 6년간 이들을 만나며 나는 한없이 행복했다. 그 행복감 속에서 나도 치유받고 있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나는 이제 오래 미뤄두었던 삶의 과제인 소설 쓰기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정신장애인들과 정신과 의사들을 만나며 뛰어다녔던 그 시간이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나에게 먼저 치유로 다가왔다는 걸 이제는 안다.
장애를 갖고 살아간다는 건 조금 불편할 뿐 그 자체가 우리를 압도하는 부정적 의미는 아니다. 우리의 한계 내에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으며 우리가 맞잡은 손으로도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회복되어 가고 있는지? 꿈을 꾼다는 건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들이 모이고 모일 때 사회의 편견은 사라져 갈 것이다. 여러분의 회복 여정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