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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트럼프 대통령의 재취임이 가져온 세계적 혼란은 경제, 외교 분야를 중심으로 커져만 간다. 장애인 정책 역시 트럼프 스타일답게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사뭇 다르다. ‘장애인에게 최저임금을 주느냐, 주지 않아도 되느냐’는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와 같은 치열한 공방이었다.
미국 장애인들의 염원은 아무래도 최저임금을 받는 데 있었다. UNCRPD의 가장 강력한 권고이기도 했지만 민주당 정부도 권고를 수용하기 어려웠다. 반면 트럼프는 일사천리로 FLSA §14(c) 법을 폐지했다. 해당 법안은 장애인 근로자에게는 ‘최저임금을 주지 않을 수 있다는 특례조항’이다. 우리나라로 보면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제도’이다. 실제로 전 세계의 장애인고용과 일자리 정책을 수행하고 있는 국가는 장애인고용에 있어 최저임금제의 적용여부에 대해 논쟁이 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최저임금을 보장해야 한다는 점과 장애인의 생산성을 고려하여 최저임금을 줄 수 없다면 주지 않아도 된다는 견해가 나뉘어 있었다.
장애인 입장에서는 일을 하면 최저임금이 보장되면 경제적 자유가 높아지는 것이니 당연히 찬성이다. 그러나 사업주 입장에서는 비장애인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판단될 수 있는 장애인을 최저임금을 주고 고용을 유지하지 않으려 한다. 이에 장애인의 구직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았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을 불식하고 트럼프 정부는 과감하게 최저임금을 주어야 한다는 데 손을 들어주었다.

특례 최저임금 제도

미국은 1938년 제정된 「공정노동기준법(FLSA, Fair Labor Standards Act)」 제14조(c)(이하, FLSA §14(c))항은 장애인에게는 연방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허용해 왔다. 이를 ‘특례 최저임금(Subminimum Wage) 제도’ 또는 ‘14(c) 제도’라고 부른다. 당시에는 장애인의 고용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한 의도로 도입되었다. 미국의 특례 최저임금 제도는 연방 최저임금법인 공정노동기준법(FLSA, Fair Labor Standards Act) 제14조(c)항에 근거해, 장애인 근로자에게 연방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예외 규정이다.
그동안 미국의 장애인 임금은 비장애인 근로자의 생산성 대비 비율로 환산하여 장애인 임금을 책정하였다. 예를 들어, 비장애인이 시간당 10개의 작업을 하고 장애인이 5개를 작업하면 장애인 근로자는 50%의 생산성만 인정되어 최저임금 7.25$의 50%인 3.625$를 지급해왔다. 특히 우리나라 직업재활시설과 같은 역할을 하는 보호작업장과 장애인 직업훈련시설에서 적용되었고 일부 민간기업에서도 활용되어졌다.

미국의 고용노동부 홈페이지
미국의 고용노동부 홈페이지

FLSA §14(c) 법안의 제정과 폐지

EAF(Enabling Accessibility Fund)의 주요 지원 항목
연도 주요 내용
1938 FLSA 제정. §14 조항에 처음으로 특례 임금 규정 포함. 당시 지적·정신장애인 중심으로 적용
1966 조항 확대: 신체적 장애인 포함. 보호작업장 개념 도입
1986 §14(c) 조항으로 분리. 특례 임금 지급에 있어 생산성 평가 기준 명시. 비장애인 대비 산술적 평가 도입
1990 ADA(장애인법) 제정. §14(c)와 충돌 우려 제기되나 동시 병존 유지
2001 노동부, 14(c) 사용 고용주의 임금 감사 기준 강화. 수당 관리 기준 신설
2012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자발적 폐지 및 전환 고용 권장. 연방 계약기관에 한정 적용 축소 논의 시작
2023 ~ 2025 연방 차원의 폐지 예고. 2024년 DOL이 NPRM (규칙예고) 발표, 2025년 최종 폐지 추진 중

시대의 흐름과 찾아온 변화

이 제도를 수립할 당시에는 장애인의 직업 기회를 넓히기 위해 도입되었다. ‘생산성 기반’ 임금체계가 없을 경우 실제로 일자리를 얻지 못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에는 도입 당시와는 다른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차별이 고착되어 정작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일한 일을 하더라도 임금격차가 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더러 생산성 평가 역시 불공정하다. 임금이 낮기 때문에 정작 일하고 싶어 하는 장애인이 별로 생기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최저임금으로 생계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수십 년간 탈시설, 통합노동운동의 결과로 보는 견해가 있다.
2024년 11월 연방 노동부(D0L)의 개정안은 86년 전통의 14(c) 특례 임금 제도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입법을 예고하였다. 더 이상 ‘특례 최저임금’은 적극적인 장애인 고용에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임금차별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인식이 주류가 되었기 때문이다. 2025년 1월 기준, 캘리포니아, 메릴랜드, 버몬트 등 16개 주가 이 제도를 금지하거나 폐지했으며, 연방 차원에서도 공식 종료 수순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우려를 하고 있다. “이 제도를 없애면 장애인 고용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그러나 실제 통계는 아래 그림과 같이 오히려 긍정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EAF(Enabling Accessibility Fund)의 주요 지원 항목
주(State) 폐지 이후 경쟁고용 전환율 주요 내용
Colorado 약 40% 고용 코칭관 직무 훈련 병행
Oregon 약 39% 지원고용 확대, 직무 코치 활용
Maryland 상승 추세 4년간 단계적 폐지, 고용 유지
Vermont 전체 전환 보호작업장 전면 폐지 후 통합고용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폐지

보호작업장에서 일반 기업 고용시장으로 이동한 장애인의 약 40% 이상이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으로 전환되었고, 나머지 인원은 고용 준비, 훈련, 코칭 등의 과정을 이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용의 질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단순히 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통합된 공간에서 일하며 자존감과 사회적 소속감을 경험하는 장애인이 늘어났다.
FLSA§14(c)를 폐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배경에는 지원고용(Supported Employment) 모델이 있었다. 지원고용이란, 장애인이 경쟁적인 일자리를 갖도록 고용 코치, 직무 조정, 출퇴근 지원등 다양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고용지원제도이다. 이른바 ‘Employment First’ 정책으로 미국의 장애인고용정책이 전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모두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경우는 복잡한 작업환경에서 적응 지원이 없으면 직업적응이 힘들 수 있다. 이에 갑작스런 폐지보다 단계적 추진을 바라는 입장도 있다. 미국의 주류 단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시민권위원회(USCCR), 국립장애인위원회(NCD), 장애인단체연맹(APSE)는 최저임금특례제도(FLSA§14(c)) 폐지를 환영하는 입장과 동시에 장애인 고용의 위축을 방지할 수 있는 대안 마련도 고심 중이다.

시혜가 아닌 권리로써의 노동

미국의 사례는 단순한 ‘법의 폐지’가 아니라, 전환과 대안의 설계가 함께 가야 함을 보여준다. 장애인을 위한 고용정책은 보호에서 권리로, 배려에서 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 역시 아직까지 많은 장애인이 보호작업장에 머물고 있으며, 중증 장애인의 일반 고용률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이제는 미국처럼 지원고용 기반의 전환 정책을 본격적으로 검토할 때이다. 장애인의 고용 또는 노동은 시혜가 아닌 권리이다. 미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가 장애인의 노동권을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책임, 그리고 새로운 장애인 고용 패러다임의 전환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mployment First 정책 사이트
Employment First 정책 사이트
워싱턴 D.C에 있는 미국 노동부 본부 ⓒchfstew
워싱턴 D.C에 있는 미국 노동부 본부 ⓒchfst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