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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화제의 소설 <헌치백>이 연극으로 무대에 올랐다. 국립극장이 지난 2021년부터 해마다 기획해 온 무장애 공연(Barrier-free)의 일환이다. 배우 하지성에게 장애인 배우 최초의 백상예술대상을 안겨준 연극 ‘틴에이지 딕’을 시작으로 올해 세 번째 이어지는 무장애 연극이다. <헌치백>은 희귀 근육질환인 선천성 근세관성 근병증을 가진 작가 이치카와 사오의 자전적 소설로 그 파격성과 도발성 때문에 많은 화제를 모은 문제작이다.

발칙하게 거침없이

40대 중증 여성장애인 ‘이자와 샤카’는 부모님이 물려준 장애인 그룹홈 ‘잉글사이드’에서 인공호흡기와 전동휠체어에 의지한 채 살고 있다. 기괴하게 등뼈가 휘어진 자신의 모습을 그녀는 ‘헌치백’이라 부른다. '헌치백'은 등이 굽은 모습을 비하하는 단어인 ‘꼽추’를 의미하며 이 원작의 제목으로서 세상이 그녀를 말하는 태도이면서 자기혐오인 동시에 자신에 대한 거침없는 표현방식이기도 하다.
조용하고 안전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료한 공간에서 태블릿 속 온라인 세상에 빠지는 것이 대부분인 그녀의 일상. 지적이고 조용하고 정숙한 여성으로 살아가는 현실의 샤카(釋華)는 온라인에서는 다른 샤카(紗花)가 된다. 샤카(紗花)를 통해 그녀는 노골적인 표현을 담은 소설을 연재하는가 하면 자신의 발칙한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고급 창부가 되는 것, 평범한 여성들처럼 임신하고 중절하는 것. 이것이 바로 그녀가 꿈꾸는 내밀하고 파격적인 욕망이다. 결국 그녀는 남성 간병인인 ‘다나카 준’에게 그녀의 비밀스러운 이중생활을 들켜 버리게 되고 자신의 염원인 임신과 중절을 다나카를 이용해 본격적으로 이루고자 시도하는데….
연극은 원작 소설이 작가 자신의 장애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당사자성’을 고려해 소설의 문장을 거의 변형하지 않고 낭독극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단조로울 수 있는 1인칭 시점의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무대 위에는 두 명, 혹은 그 이상의 샤카가 그녀의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등장하여 자신의 속마음을 서술하거나 때로는 자신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인간 선언

“나는 종이책을 증오한다. (...) 그 특권성을 깨닫지 못하는 이른바 ‘서책 애호가’들의 무지한 오만함을 증오한다. ‘종이 냄새가’, ‘책장을 넘기는 감촉이’, ‘왼손에서 점점 줄어드는 남은 페이지의 긴장감’이라고 문화적 향기 넘치는 표현을 줄줄 내비치기만 하면 되는 비장애인은 아무 근심 걱정이 없어서 얼마나 좋으실까.”그녀의 이런 증오는 장애가 있는 나에게조차도 신선했다. 그녀 말대로 종이책을 넘기는 일은 적어도 다섯 가지의 신체 능력을 요구한다. 그녀의 신체 능력으로는 종이책을 들고, 넘기는 일마저도 큰 고통이 되니 종이책은 그녀에게 증오의 대상이 된다. 온갖 문화적 향기 넘치는 표현을 해가며 종이책을 사랑한다고 무심히 말하는 사람도 그녀에겐 증오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녀가 말하는 증오는 우리가 흔히 아는 그런 ‘증오’가 아니다. 그것은 그녀의 말처럼 ‘운동 능력이 없는 내 몸이 아무리 소외를 당하더라도 공원 철봉이나 정글짐에 증오감을 품지는 않는’ 것과 같다.
성매매업소에서 일하는 주인공이 연락도 없이 오지 않는 한 남자를 그리워하며 앙탈을 부리듯 ‘미워 죽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연극 속 그녀의 마지막 상상 속에 나온다. 그 ‘미워 죽겠는’ 증오에는 애정과 갈구, 닿고 싶은 갈망이 담겨 있다. 이것이 바로 ‘종이책을 증오하면서도 종이책에 달라붙어 끝까지 읽는’ 그녀의 진심이다. ‘임신과 중절, 그리고 고급 창부’를 꿈꾸는 그녀의 욕망 역시 그런 맥락이 아닐까. 가령 장애인이 ‘나도 걷다가 다리가 부러져 봤으면’이라든가 ‘붐비는 버스 타고 출퇴근하느라 과로사 해봤으면’하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 말이다. 장애가 있는 여성은 무성의 존재로 치부되어 버리는 세상에서 ‘임신이나 고급 창부’에 대한 열망은 성적 욕망을 가진 존재로서의 열망과 갈구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1996년까지 일본에는 「우생보호법」이 존재했다. 우생학을 기반으로 한 「우생보호법」은 우월한 생명체 보호를 목적으로 장애인의 생명을 부정하고 여성의 생식 권리를 국가가 통제하려 한 악법이었다. 샤카의 ‘중절’에 대한 열망은 바로 그것을 꼬집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생존조차 불가능한 삶에서도 그녀는 거침없이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고 위악적으로 세상을 비꼬면서 장애만으로 규정될 수 없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그녀 말대로 ‘살기 위해 파괴되고 살아낸 시간의 증거로 파괴되어 가는’ 존재로서 기꺼이 주어진 삶을 살아내고 있는 그녀의 치열한 인간 선언이기도 하다. “ <헌치백>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상호교차성으로, 강자와 약자의 구도 또한 고정적이지 않다.”고 원작자인 이치가와 사오는 작품에 대한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다. 간병인 다나카와 1억 5500만 엔(155cm 그의 키 만큼의 금액)에 성을 거래한 샤카. 가난한 간병인과 그의 성을 돈으로 사는 부자 장애인 샤카의 갈등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 싶어 했던 상호교차성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신랄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면 연극이 더 긴장감 있고 재미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새로운 트렌드가 될 수 있을까

최근 공연예술에서도 배리어프리에 대한 요구와 시도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연극 <헌치백>에서도 캐릭터별 수어통역과 감각적인 자막, 그리고 화면해설까지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되었다. 팜플렛도 점자와 묵자가 병기된 팸플릿으로 제작되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커튼콜 때 박수치면서 일어나면 저처럼 휠체어 타는 사람은 앞사람 엉덩이만 보게 돼요. 감명 받은 마음은 알지만 장애인만이 아니라 키가 작은 사람, 노인, 어린이도 있잖아요. 앉아서 환호할 순 없는 건지, 함께 즐길 방법을 찾아봤으면 좋겠어요.” 주인공 샤카 역을 맡은 장애인 배우 차윤슬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지적하며 ‘커튼콜 때 앉아서a 박수치기’를 제안했다. 매우 필요한 지적이다. <헌치백> 공연뿐만 아니라 앞으로 모든 공연이 ‘모두에게 동등한 문화예술’로서 접근 가능한 문화로 확장되어 가고, 그것이 당연한 새로운 트렌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