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분필이 보이지 않게 됐다. 보드마커와 워터초크가 분필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이제 한국에서 분필을 만드는 곳은 단 한 곳. 마지막 남은 분필 공장이자, 명품 분필을 넘어 명품 문구를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연구를 계속하는 세종몰의 신형석 대표를 만나 보았다.
세종몰 신형석 대표
한국을 대표하는 명품 문구를 꿈꾼다-
- 글.
- 문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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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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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과 일터> 독자를 위해 신형석 대표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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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안녕하세요. 저는 명품 문구를 만드는 ‘세종몰’의 대표 신형석입니다. 세종몰은 품질 높은 문구류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일상에 즐거움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저 또한 오랜 시간 문구 업계에 몸담으며 현장의 변화와 성장을 함께해 왔습니다. 오늘 이렇게 <장애인과 일터>를 통해 인사드리게 되어 반갑고, 저희 이야기가 독자 여러분께 조금이나마 영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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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몰은 어떤 명품 문구를 만들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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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몰은 명품 분필 ‘하고로모’로 시작한 회사입니다. 처음 10년 정도는 ‘하고로모’를 수입해 판매하는 것으로 시작했는데요. 이제는 ‘하고로모’ 분필을 직접 제작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생산하게 된 지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네요. 탄산분필에 그치지 않고 분필 홀더와 칠판지우개, ‘원더초크’, 필기류 등 다양한 문구류를 개발하여 제작하고, 판매하고 있습니다.
알록달록한 세종몰의 대표 제품
유리에도 부드럽게 그려지는 원더초크를 시연하는 신형석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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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고로모’ 분필 이야기는 유명하죠. ‘하고로모’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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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로모’ 분필은 일본에서 3대째 이어 생산해오던 고급 분필입니다. 날개옷이라는 뜻이에요. 그래서인지 정말 날개옷을 입은 것처럼 부드럽게 필기가 가능합니다. ‘하고로모’가 형광색 분필을 만들게 된 이유도 적록색맹 학생을 위해서예요. 초록색 칠판 위에 붉은 분필로 강조하게 되면 적록색맹이 있는 학생은 보지 못하니까요. 형광색을 사용하게 되면 색은 보이지 않아도 형태는 보이게 되죠. 저는 수학학원 강사 생활을 오래했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분필도 많이 사용했는데, 일본에 출장을 갔다가 ‘하고로모’ 분필을 알게 되었죠. 당시 한국에는 ‘하고로모’ 분필을 판매하는 곳이 없어서 제가 직접 수입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쓸 분필을 수입하는 김에 주변 선생님들에게도 팔게 되었어요. 일종의 부업 같은 느낌으로 시작하게 된 거였죠.
그러다가 ‘하고로모’의 사장님의 지병이 악화되면서 문을 닫게 될 위기에 처했어요. 여러 방도를 찾다가 제가 물려받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강사 생활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사업에 매진하게 되었어요. -
- *하고로모 문구(羽衣文具)는 와타나베 시로(渡部四郎)가 일본 초크 제조소(日本チョーク製造所)라는 이름으로 1932년에 설립한 유서 깊은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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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적으로 사업을 매진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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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로모’ 분필을 사용하는 사람으로서, 이 분필이 사라지는게 아쉬웠습니다. 물론 분필은 사양산업이죠. 당시에도 주변에서 많이들 만류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좋은 분필이 없어지면, 분필을 사용하는 사람이 더 빨리 사라지지 않을까요? 만약 분필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다고 해도 가장 좋은 분필이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에 남은 분필 회사는 ‘하고로모’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장님에게도 이 생각을 전하니 많이 고마워하셨어요. 공장의 기계를 옮긴다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이 아닌데 적극적으로 도와주셨죠. 40피트 컨테이너 16대 분량을 가져왔고, 일본과 한국은 전압이 달라 기계를 설치하는 데에도 애를 먹었습니다. 직접 제조한 분필을 판매하는 데에 꼬박 1년이 걸렸어요. 2016년 1월 1일에 처음으로 ‘메이드 인 코리아’가 적힌 ‘하고로모’ 분필을 판매하게 되었죠.
세종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신형석 대표
세종몰의 퀄리티를 입증해주는 다양한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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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고로모’의 이야기는 유명하지만 정작 대표님께서 장애가 있으시다는 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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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저는 한 살에 오른쪽 하지에 마비가 왔어요. 이동할 때에는 늘 한손으로 짚고 다녀야 했죠. 그러다가 중학생 때 제가 걷는 모습을 지켜본 행인이 제 집을 여쭤보시더니 함께 집으로 갔어요. 그 분이 부모님께 보조기기를 권하셨죠. “학생은 오른쪽 하지를 손으로 잡고 다니는데, 보조기기를 차면 잘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학생에게 보조기기를 해주는 게 어떠냐.”라면서요.
그렇게 중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보조기기를 맞추게 됐는데, 말 그대로 신세계였어요. 이제 움직이면서 두 손을 다 쓸 수 있으니까요. 이전과 비교해보면 천지 차이죠.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느꼈어요. 보조기기가 제게 큰 용기를 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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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사 생활을 오래하셨는데 사업과 어떤 차이가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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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생활을 할 때에는 장애가 있다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어요. 한쪽 다리가 저는 게 눈에 보이니까, 학생들 앞에서 작은 것이라도 실수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정말 준비를 많이 하고 수업에 들어가야 했죠. 반면에 사업을 하게 되니까 오히려 장애로부터 자유로워졌어요. 앉아서 연구 개발을 하고, 바이어와 만나고, 직원과 소통하는 것에 장애가 있다는 점에서 큰 어려움은 못 느꼈어요.
장애인 기업은 지원 제도가 많아요. 잘 찾아보시면 큰 도움이 됩니다. 저희 세종몰이 특허를 가지고 있는 이 분필 홀더도 장애인 기업 시제품 제작 지원 사업으로 2,000만 원을 지원 받아 만들게 된 거예요. 이 홀더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을 받았죠. 장애인기업이면 해외 박람회 참여 활로를 마련해주기도 해요. 정말 다양한 지원 제도가 있으니 두려워 말고 시도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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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문구류를 제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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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품인 ‘원더초크’는 장애인 기업 무역 시찰단 참여 경험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두바이를 방문하게 됐는데, 두바이에서는 칠판 대신 화이트보드를 사용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희 분필은 판매하기 어려웠죠. 대신 화이트보드에 쓸 수 있는 제품을 고안하게 됐습니다. 보드마커는 재활용이 어려운 플라스틱인데, 두바이는 국가적으로 친환경에 관심이 많거든요. 그래서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오지 않으면서 화이트보드에 쓸 수 있는 분필, ‘원더초크’를 만들게 됐습니다. ‘원더초크’는 케이스도 재활용 종이를 사용했어요.
강사 생활을 오래 했다 보니, 사용하며 불편했던 점을 개선하기도 했죠. 가령 저희가 개발한 칠판지우개는 칠판에 붙을 수 있도록 자석이 내장되어 있어요. 저희가 개발하기 전에는 자석으로 붙는 칠판지우개는 구하기 힘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칠판 아래에 지우개를 거치해두는데, 그러자니 지우개 위에 분필 가루가 쌓여서 계속 손에 묻는 거예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칠판에 붙는 형태를 고안했습니다. 실험을 거듭한 끝에 만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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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업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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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하고로모’ 분필의 형광색은 다섯 가지였어요. 분홍, 노랑, 연두, 파랑, 주황. 그런데 어느 날 한 고객이 형광보라색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어요. 6개월이 지나고 나서 같은 요청을 해주셨죠. 이후 1년이 지나자 한 번 더 요청을 주셨고요. 이렇게 원하시는 분이 계시니, 저희도 개발에 착수했죠. 형광보라색은 어떤 안료가 적절할지 수많은 실험 끝에 만들어낸 거예요. 결국 시장에 내놓게 됐고, 저희 생각 이상으로 반응이 좋았던 기억이 나네요. 뿌듯하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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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몰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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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분필 ‘하고로모’의 장인 정신을 이어 받아 명품 문구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요즘 한국이 대세잖아요. ‘K-팝’, ‘K-드라마’ 처럼 문구도 ‘K-문구’를 전 세계에서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기존에는 문구류 하면 독일과 일본을 먼저 떠올리지만, 저희 세종몰을 통해 최고의 문구가 한국에서 만들어진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30년 경력의 분필 장인과 함께 분필 하나하나 휘어진 부분이 없는지 확인하는 신형석 대표
세종몰 한켠, 알록달록 분필 모형이 시선을 끄는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