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를 가진 필자는 약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자신의 현실과 일터에서의 생존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A센터의 구성원들처럼, 약을 먹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공간을 상상하며, 차별 없는 협업과 배려가 당연한 사회를 그려본다.
괜찮은 삶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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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조미정 (신경다양성 지지 모임 세바다 대표)
나는 정신장애인이다
약을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 약을 먹지 않으면 ‘위험한 사람’이 되는 사람. 조현병 약을 포함해 다양한 종류의 약을 먹은 지 9년이 흘렀다. 이런 사람도 일터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상상과 현실을 섞어 써보려 한다. 어느 날 새벽, 정신장애 증상이 나를 덮쳤다. 방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고, 나는 팔을 긁으며 자해했다. 경찰을 부르고는 다시 돌려보내는 일을 반복했다. 아침에는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서 진정제 두 대를 맞았다. 그리고 재택근무 출근 도장을 찍었다.
나는 그날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아직도 모른다. 그날 내가 한 말이 전화기에 녹음되어 있지만, 다시 듣기 두려울 정도의 말이었던 것 같다. 팀장님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고, 나는 헛소리를 늘어놓기 바빴다. ‘정상적으로 일을 할 수 없는 상태’라는 진단이 내려졌고, 나는 ‘강제로 퇴근’했다.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정신장애인은 약을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 점 하나는 인정해야 한다. 누군가는 ‘화학적 구속’이라고 말하지만, ‘평생’ 약을 먹지 않으면 ‘조절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는 현실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사람의 호르몬을 뒤흔드는 약 몇 가지를 매일 먹거나 주사로 맞지 않으면 나로서 살아갈 수 없는 사람. 그것이 내가 살아야 하는 현실이다.
이쯤 되면 나는 약인가, 약이 나인가? 구분도 되지 않는 삶을 살아오면서, 별것 아니지만 약 하나쯤은 마음 놓고 먹어도 되는 삶을 꿈꿨다. ‘약자생존’을 말하면서, ‘약 먹는 일상’이래도 괜찮은 삶을 바랐다. 이 다음부터는 상상이다. ‘아직’ 현실은 아니다.
약을 먹는 것도 ‘일’입니다
정신장애인과 신경다양인(뇌 신경이 다양한 모습으로 발달한 사람)을 지원하는 A센터의 팀장 지현 씨 역시 정신장애인이다. 오늘은 중요한 회의가 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서랍에서 ‘인*놀’ 약통을 꺼내 두 알을 물과 함께 삼킨다.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지현 씨는 회의 때마다 늘 긴장한다. 긴장을 풀어주는 약을 먹어야 팀장 구실을 할 수 있다. 그런 그녀를 다른 직원들은 무심히 바라보다 각자의 길을 간다. 아무도 그녀가 약을 먹는 걸 신경 쓰지 않는다. 그녀의 근로지원인이 캘린더에 ‘인*놀’ 표시를 할 뿐이다.
약을 먹는 것도 그녀에겐 업무의 일부이기에 근로지원인(장애인의 업무를 지원하는 사람)이 약을 엄마처럼 챙겨준다. 아까 했던 회의가 목에 걸렸는지, 지현은 켁켁대며 알약 몇 개를 토해내듯 하다가 다시 주워 삼킨다. 근로지원인은 말없이 물을 건네고, 지현은 마신다. 옆 팀 팀장 성준 씨가 지현을 보며 조심히 마시라고 한마디 건넨 후 지나간다. 지현은 캘린더를 보며 벌써 내일 있을 주치의 면담을 떠올린다.
모두의 루틴, 누구의 차별도 없는
이곳에서는 주치의 면담이 휴가 거리도 아니다. 센터 사람들은 대부분 정신장애인 혹은 신경다양인이라, 약을 타러 가는 것쯤은 일상처럼 받아들인다. 약을 먹지 않는 신경다양인이라 해도, 약을 먹는 정신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다. 약을 먹든 안 먹든 같은 센터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기에 ‘네 편, 내 편’이 없다. 누구는 약을 먹고 누구는 안 먹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그 사실을 가벼운 입으로 떠들지도 않는다. 알약 몇 개가 누군가에겐 ‘특별’이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일상’이기 때문이다.오늘은 성준 씨가 힘든가 보다. 옆 팀 회의 중 잠깐 쉬러 간다며 일어나더니, 탕비실에서 근로지원인이 비상약을 챙겨준다. 그는 옆에 놓인 빈백(콩주머니 모양의 소파)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이 센터에서는 누군가 회의 중 뛰쳐나가도, 나머지 팀원과 근로지원인들이 그 틈을 자연스럽게 메운다. 애초에 업무 매뉴얼 자체가 ‘누군가 정신적 어려움으로 힘들어할 수 있음’ 을 전제하고 쓰였기 때문이다.
이번엔 지현 씨가 성준에게 잔소리를 한다. 성준은 들은 체 만 체한다. 이곳에서는 ‘자조적 유머’를 해도 거리낄 게 없다. 모두가 장애인인 이곳에서, 누군가의 특별함은 차별도 뭐도 아니다. 약도, 잔소리도, 당사자가 90%를 넘는 직장에선 그저 ‘루틴’일 뿐이다.
나의 특별함도, 팀장님에겐 그저 지나가는 일상이 되길 바란다. 다소 엇나간 생각도 업무 중 문득 스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의 상상이 반역이 되지 않는 곳에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