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지의 서울>은 약점과 비밀을 지닌 인물들이 서로의 다름을 통해 관계를 맺고 성장해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린다. 장애를 특별하게 미화하거나 비극으로 그리지 않고, 인간을 이루는 자연스러운 다양성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인상적이다. 약함이 곧 연결의 고리가 되는 이 작품은, 아직 알 수 없는 ‘미지의 나’와 ‘미지의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조용한 위로를 건넨다.
미지라서 다행이야
드라마 <미지의 서울>이 건네는 위로-
- 글.
- 차미경 문화칼럼니스트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 혹은 약점
사람에겐 누구나 쉽게 말할 수 없는 비밀 하나쯤은 있다. 그것이 가족이라 해도,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해도 결코 꺼내놓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비밀 혹은 약점 말이다.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는 그런 사람들이 등장한다.
쌍둥이 자매 미지와 미래. 미지에게는 다리를 다쳐 육상선수의 꿈을 접은 뒤, 대인기피증으로 히키코모리처럼 지낸 어둠의 시간이 있었다. 미지 자신은 물론, 가족 모두에게 아팠던 그 시간은 누구에게도 말해지지 않은 채, 이웃에게는 그저 ‘미지가 서울에 가 있었던 시간’ 으로만 알려졌을 뿐이다. 미래는 병약했던 어린 시절을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견뎌낸다. 그 죄책감 때문에 어떤 일이든 혼자 감내하려 애쓴다. 원하지 않았지만 가족을 위해 선택한 직장에서의 괴롭힘과 불의도 묵묵히 참아낸다.
결국 그런 미래와 미지가 서로의 자리를 바꾸며 벌어지는 이야기지만, 이들 외에도 가족과 이웃들 모두가 자신만의 약점을 품고 있다.
그게 약점이야? 강점이야? – 이호수 vs 이충구
저마다의 약점을 지닌 인물들 중, 이호수와 이충구는 단연코 이 드라마 최고의 관전 포인트다. 처음 내가 이 드라마를 보게 만든 인물도 이충구였다.
3대 거대 로펌의 대표이자 승률 최고의 변호사인 그는, 유능함을 넘어 자신만의 독특한 아우라를 풍기는 인물이다. 그의 전동휠체어와 지팡이가 어우러진 모습, 당당하게 치켜든 콧대와 윤기 나는 구두의 반짝임은 나를 단숨에 매료시켰다. 신체적 특징이 오히려 그의 강인함과 특별함을 부각시키는 역설적인 매력은, 시청자로 하여금 이충구라는 인물에 대한 깊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후배 변호사 이호수.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몸에 화상 자국을 입고, 한쪽 다리와 귀에 장애가 남은 그는, ‘무조건 이기는’ 이충구를 롤모델 삼아 로펌에 입사한 새내기 변호사다.
이호수에게 이충구는 단순한 선배를 넘어, 자신의 약점과 마주하기 위한 하나의 이정표가 된다.
암묵적으로 서로를 특별하게 이어주던 장애라는 공통점은, 어느 순간 균열의 계기가 되며, 두 사람 사이에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간다.
이충구: “나는 네 강점 때문에 곁에 두려 한 건데, 너는 내 약점 때문에 옆에 있는 거구나. 그런데 나 그거 질색이거든.”
이호수: “그게 나쁜가요? 선배님이 약점이라 말하는 그 부분이 전 선배님을 더 강하고 특별하게 만드는 거 같은데. 약한 모습에 마음이 가고, 그 약함 때문에 더 존경하게 되는 게 그렇게 나쁜 건가요?”
이 대화에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어떤 교훈을 찾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는 ‘슈퍼장애인’ 서사라든가, ‘장애에도 불구하고’라는 전제를 내건 진부한 교훈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장애는 약점도, 강점도 아니다. 그저 한 개인을 구성하는 수많은 다양성 중 하나일 뿐이다.
이충구, 그 남자의 디테일
“이 식당엔 휠체어 탄 사람은 안 오나 보죠?”
이충구가 로사식당에 들어서며 지팡이를 짚고 하는 말이다.
이 장면에서 나는 작은 탄성을 질렀다. 미지가 로사식당을 드나들 때 입구의 작은 턱을 보며 내가 했던 생각을, 이충구가 정확히 짚어냈기 때문이다.
휠체어를 타는 사람이라면 너무나 공감할 만한 그 순간을, 휠체어 탄 변호사의 입을 빌려 전한 이 디테일. 그동안 다른 드라마에서는 휠체어 사용자의 이동 장면을 대부분 생략하고, 어느덧 도착한 모습만 보여주곤 했다. 그러나 <미지의 서울>의 이강 작가 역시 그런 무성의한 묘사들이 마뜩잖았던 게 아닐까. 그래서 이렇게 신선한 디테일을 넣은 게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장애가 뭐라고?
종반부에는 청력을 잃어가는 호수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설정은 자칫하면, 세상 모든 불행을 짊어진 주인공과 이를 눈물로 지켜보는 애인의 클리셰 신파로 흘러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드라마는 신파의 유혹을 가볍게 비껴간다. 장애를 죽을 병이나 비극으로 그리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겪어가는 생의 또 다른 과정처럼 담담하게 보여준다. 수어를 배우며 준비하는 모습, 그리고 이충구가 흔들리는 이호수에게 던지는 이 한 마디.
“약함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더니, 정작 너는 약점 드러낼 생각이 없나 보네. 그게 네 약점인가?”
약점은 드러내지 않으려 할 때 비로소 약점이 된다는 사실을, 이충구 특유의 냉소와 통찰로 건네는 이 장면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서로 다르지만, 서로의 장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두 사람이 다시 연결되는 모습에, 나는 빙그레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약점이든 강점이든, 인간의 ‘약한 부분’은 우리 존재의 자연스러운 일부이며, 관계를 더 풍요롭게 만드는 잠재적 연결 고리가 될 수 있다. 그 약함이 서로를 다독이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을 따뜻하게 그려낸 드라마. 우리는 모두 서로를 더 깊이 알아가야 할 ‘미지’의 존재이며,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내가 가진 약점도, 다가올 미래도 아직은 미지수라니.
미지라서 다행이다. 미지라서, 더 살아볼 만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