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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소리만으로는 다 닿을 수 없는 세계가 있다. 손끝과 표정, 눈빛으로 이어지는 수어는 단순한 ‘대체 언어’가 아니라 세상을 더 깊고 넓게 바라보게 하는 또 하나의 언어다. 일본 도쿄에서 농인 친구들과 떠난 여행은 글쓴이에게 낯선 불편과 동시에 새로운 소통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손바닥에 새겨진 오래된 습관, 어설픈 농담 속에서 이동희 작가는 깨달았다. 수어는 장애의 경계를 넘어 모두의 삶을 풍성하게 확장하는 언어라는 것을.

여행이 열어준 낯선 언어

봄빛이 번지던 어느 날, 나는 농인 친구들과 처음으로 일본 도쿄 여행을 떠났다. 여러 번 가 본 도시였지만, 이번만큼은 전혀 다른 길 위에 서 있는 듯했다. 구화*에만 기대어 살아온 나에게 낯설고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멀리 걷는 친구를 불러도 뒤돌아보지 않아 직접 달려가야 했고, 말이 막힐 땐 필담에 의지해야 했다. 그 느리고 막막한 순간마다 나는 조금씩 수어를 배웠다. 여행의 끝자락에서는 수어로 가벼운 농담을 건넬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수어는 손끝에만 머무는 언어가 아니었다. 얼굴의 표정, 몸짓, 눈빛까지 모두가 대화의 재료가 되었다. 농인들과 함께한 자리는 늘 활달하고 풍성했다. 말이 중심인 자리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 *입으로 말을 하여 의사를 전달하는 행위

손바닥에 새겨진 오래된 습관

반면 비장애인과의 자리에서는 달랐다. 시끄러운 장소에서 말을 놓친 나는 본능처럼 손바닥을 내밀었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들은 내가 알아듣지 못할 때 늘 손가락으로 그 위에 단어를 써주곤 했다. 몸에 새겨진 오래된 습관이었다. 그러나 처음 마주한 사람에게 이 행동은 낯설고 당혹스러웠나보다. 상대는 잠시 멈칫하다가 결국 메모장 어플을 켜서 단어를 적어 보여주었고, 나는 민망해진 손을 서둘러 감췄다.
사실 손바닥이나 벽, 허공, 탁자에 글자를 쓰는 방식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청각장애인들 사이에서는 꽤 흔히 쓰이는 소통의 도구다. 농인들과 있을 때 나는 오히려 자유로웠다. 발음에 눈치 보지 않아도 되고, 작은 실수에 움츠러들 필요도 없었다. 우리에겐 수많은 소통의 방식이 있었으니까.

수어, 세상을 확장하는 언어

그날 이후 나는 본격적으로 수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수어는 농인을 위한 언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소통을 확장하고 세상을 더 풍부하게 이해하게 만들 수 있는 온전한 언어다. 음성언어만을 고집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제약일 수 있다. 손짓과 몸짓, 표정과 글씨, 지화와 메신저. 인간은 이렇게나 다양한 길로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수어를 배우는 건 그래서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나는 글쓰기 강의를 하며 많은 청각장애인을 만난다. 특히 구화를 중심으로 살아온 이들은 수어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다. “말로 할 수 있는데 굳이 배워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들으면 오래전의 내가 겹쳐 보인다. 예전이라면 그러려니 했지만, 이제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외국어를 배우듯 수어를 배워보자고. 주 언어가 아니어도 괜찮다. 서툴더라도 서로에게 닿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소통은 더 다채로워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넓어진다.
도쿄에서의 대화는 느리고 어설펐지만 서로에게 분명하게 닿았다. 그 기억은 내 삶을 확장하는 힘이 되었다. 수어를 배우며 마주했던 세계로 인해 나는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었다. 손끝에서 피어난 단어 하나하나가 마음과 마음을 이어줄 때, 소통이라는 본질에 집중할 때, 장벽은 낮아지고 삶의 기쁨은 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