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를 가진 고아라 발레리나는 춤을 통해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왔다. 어린 시절 반짝이는 발레의 세계에 매료된 순간부터, 평창 동계패럴림픽의 터닝포인트, 그리고 현재 안무가·강연자·예술단체 운영자로 활동하는 지금까지. 그녀의 무대는 ‘장애’가 아닌 ‘새로운 감각’과 ‘주체적 예술’의 메시지를 전한다.
발레리나 고아라
새로운 감각으로 무대를 채우다-
- 글.
- 강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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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발레리나 고아라
발레와의 첫 만남, 몸으로 기억된 표현
고아라 발레리나가 발레를 처음 본 순간은 마치 현실 밖의 장면 같았다. 무대 위 무용수의 의상은 반짝이는 보석을 품고 있었고, 발끝으로 서서 공중을 스치는 듯한 동작은 중력을 거스르는 것처럼 보였다. 어린 소녀의 눈에는 그것이 단순한 춤이 아니라, 일상의 질서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학교와 집을 오가던 일상에서 접해본 적 없는 장면은 그녀의 마음에 강렬한 흔적을 남겼다. 그 낯선 세계는 동시에 두려움과 매혹을 안겨주었다. 발레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특별해 보였고, 그렇기에 더더욱 발을 들여놓고 싶게 만드는 세계였다.
“보석이 반짝이는 의상과 발끝으로 서는 동작은 마치 중력을 무시하는 것 같았어요. 평상시와는 다른 옷차림과 걸음걸이가 전혀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죠.” 청각장애가 그녀의 표현을 가로막지는 않았다. 오히려 리듬을 세고 몸으로 기억하며 춤에 몰입하는 습관은 표현력을 더욱 풍부하게 했다. 음악을 따라 흘러가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녀는 박자를 세어가며 움직임을 새겼다. 감각이 다르게 작동하는 만큼 표현의 결도 남들과는 달랐다.
“한 마디를 8카운트로 나누어 세다 보니 습관이 되었어요. 언어보다 몸으로 표현하는 게 더 익숙했고, 그래서인지 학창 시절에도 ‘표현력이 풍부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죠.”
발레는 고아라 발레리나에게 단순한 취미나 훈련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른 이들이 글이나 말로 감정을 표현하듯, 자신에게는 춤이야말로 가장 솔직하고 정확한 언어였다. 청각장애라는 조건 속에서 발레는 그녀에게 세계와 이어지는 통로가 되었고, 몸짓 하나하나가 삶을 증명하는 문장이 되었다. 그렇게 그녀는 발레를 통해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언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린 나이에 이미 체득했다.

평창 무대, 삶을 증명한 순간

고아라 발레리나가 춤 인생의 전환점으로 꼽는 무대는 단연 2018년 평창 동계패럴림픽이다. 무대를 앞두고 수없이 반복한 리허설은 그녀를 지치게도 했지만, 동시에 한 치의 오차 없는 완벽함을 향한 갈망으로 이끌었다. 무대 뒤에서 대기하던 순간의 긴장감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막상 무대 위에 오르자, 고아라 발레리나는 처음으로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했다.
“안무, 음악, 조명, 무대, 의상까지 모두가 오로지 ‘나’를 위한 무대처럼 느껴졌어요. 그때 깨달았죠. 오늘을 위해 지금까지 춤을 추어왔구나.” 그녀에게 그날의 무대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었다. 무대 위에서의 시간은 지난 시절의 고독과 싸움, 발레를 이어오기까지 겪었던 수많은 어려움이 모두 응축된 순간이었다. 청각장애라는 조건 속에서도 꿋꿋하게 몸으로 리듬을 새겨온 시간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무대 위에서 하나의 응답처럼 돌아온 것이다.
이 경험은 고아라 발레리나를 더 이상 ‘장애인 무용수’라는 한정된 틀 안에 가두지 않았다. 그녀는 무대에서 스스로를 ‘예술가 고아라 발레리나’로 증명했다. 평창 이후 그녀는 무용수라는 단일한 정체성을 넘어, 안무가로서 작품을 기획하고, 강연자로서 이야기를 전하며, 예술단체 운영자로 동료들과 무대를 꾸려나갔다. 예술의 폭이 한층 넓어진 것이다. “평창 이후 대우가 조금 달라졌어요. 학창 시절 힘들었던 과정들이 결국 다 필요한 과정이었구나 싶었고, 더 이상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를 느꼈습니다.”
그녀가 말하는 ‘자유’는 단순히 개인적 성취의 해방감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장애라는 이름으로 부여된 낙인과 사회적 제약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존재를 온전히 예술로 증명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고아라 발레리나는 그 무대 이후로 작품 하나하나에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내며, 더 이상 발레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춤이 아닌, 스스로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기록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새로운 감각, 주체적 예술
고아라 발레리나의 작품에는 일관된 메시지가 흐른다. 그것은 바로 ‘주체적 삶’이다. 그녀가 무대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것은 장애를 드러내는 서사가 아니다. 오히려 다름을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감각, 그리고 그 감각을 예술적 언어로 확장해내는 인간의 가능성이다. <가지 않은 길>, <어떤 불편함, 또는 그 사이 어딘가>, <DEAFREQUENCY> 같은 작품들은 그 철학을 잘 보여준다. 작품 속 무대는 청각장애를 불편함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그 결핍이 다른 감각을 깨우는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드러낸다. 그녀는 말한다. “작품을 만들 때 ‘장애’를 드러내려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다른 감각을 가진 주체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무대 형식에서도 드러난다. 그녀는 음악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진동과 촉각, 시각적 신호가 음악을 대체하고, 오히려 더 직관적인 리듬으로 몸을 움직이게 한다. 최근에는 AI 기술을 활용해 청각 대신 느낄 수 있는 새로운 도구를 실험하고 있다. 소리를 진동으로 전환하거나, 목소리를 멜로디로 변환해 움직임과 결합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시도는 단순히 기술을 빌려 쓰는 차원을 넘어, 감각을 새롭게 ‘번역’하는 작업이다. “기술은 감각을 번역해준다고 생각해요. 미디어아트와 결합하면 장애를 드러내는 게 아니라, 또 다른 표현의 주체가 될 수 있죠.” 실제로 그녀의 무대에서는 미디어아트와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새로운 감각의 서사가 완성된다. 관객은 장애를 바라보지 않고, 대신 감각이 확장되는 경험을 체감한다. 무대는 특정한 결핍을 드러내는 공간이 아니라, 주체적 예술이 탄생하는 장(場)으로 바뀌는 것이다. 고아라 발레리나에게 춤은 단순한 표현 수단을 넘어선다. 그것은 감각을 번역하고 재구성하며, 다른 이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안하는 과정이다. 그녀의 작품은 결국 우리에게 묻는다. 장애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다름을 이해할 것인가.


협업, 그리고 미래의 무대
장애 예술가와 비장애 예술가가 함께하는 무대는 고아라 발레리나가 꾸준히 지향해온 지점이다. 그녀는 협업의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만, 동시에 현실의 어려움도 솔직하게 지적한다. 작품을 함께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문제는 소통이다. 대화와 리허설, 무대 운영 전반에서 장애 예술가가 충분히 참여할 수 있도록 통역이나 접근성 지원이 필요하지만, 이를 위한 기본 예산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소통 방식은 여전히 과제예요. 장애 예술가와 비장애 예술가가 진정으로 협업하려면, 가장 기초적인 접근성을 보장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기본적인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고아라 발레리나는 예술가로서의 비전을 잃지 않는다. 그녀는 오히려 장애 예술가와 비장애 예술가가 함께 작업하며 서로의 감각을 배우고 확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는다. 그 과정에서 진정한 협업은 단순히 무대를 함께 올리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새로운 예술적 언어를 만들어가는 것이라 강조한다.
고아라 발레리나는 단기적 목표는 전문적으로 무용단을 운영하는 것이다. 현재는 무용수들이 생계를 위해 낮에는 다른 일을 하고, 저녁이나 주말에 시간을 내어 연습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그녀는 이러한 구조를 바꿔 무용수들이 안정적으로 창작 활동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한다. “아마 10년 뒤에도 춤을 추고 있겠죠. 몸이 지금처럼 강하지 않아도, 또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그게 저의 예술이자,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