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여성의 임신과 출산을 다룬 영화는 대체로 ‘가능할까?’라는 의심과 ‘괜찮을까?’라는 우려의 시선에 머무르곤 한다. 그러나 영화 <우리 둘 사이에>는 이 오래된 질문의 틀을 과감히 벗어난다. 장애를 극적 장치로 소비하지 않고, 여성의 몸과 삶을 이루는 조건 중 하나로서 담담히 담아낸다. 그 결과, 이 영화는 ‘장애 여성의 임신과 출산’이라는 특수한 주제에서 출발해 모든 여성에게 보편적으로 던질 수 있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새로운 질문을 시작하는 자리에서, 관객은 편견이 아닌 공감으로 미소 지을 수 있다.
새로운 질문의 탄생
영화<우리 둘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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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차미경 문화칼럼니스트
장애 여성의 임신과 출산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우려와 걱정이 앞선다. “자기 몸도 감당하지 못하면서 그 몸으로 어떻게 아이를 낳아 키우겠다는 거야?”, “엄마의 장애가 아이에게 유전되는 건 아니야?”, “과연 출산이 가능하기는 할까?” 같은 질문들이 대표적이다. 미디어가 담아내는 시선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상영된 영화 <똥싸는 소리>가 그 예다. 실제 장애가 있는 주인공의 실화를 바탕으로, 장애 당사자인 감독이 연출했다고 해서 기대가 컸던 작품이었으나 아쉬움이 남았다. 이전과는 다른 장애 인식을 보여주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미처 지우지 못한 편견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둘 사이에>도 혹시 같은 실망을 주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엔딩 자막이 올라갈 때는 미소를 지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무엇이 나를 그렇게 안심시켰을까.
장애, ‘특별한’ 조건이 아닌 ‘존재’의 일부


많은 영화에서 장애는 극적인 서사를 위한 도구나 감정적 호소를 위한 장치로 소비되곤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주인공 은진(김시은 분)의 척수장애를 그녀 삶의 일부로 담담하게 그려낸다. 휠체어를 타고 살아가는 일상, 임신으로 변화하는 신체적 감각이 과장되거나 미화되지 않고 한 사람의 구체적인 경험으로 제시된다. 관객은 ‘타자의 시선’에서 벗어나 은진의 내면과 감정에 집중하게 된다.
예컨대, 긴 계단 때문에 들어갈 수 없는 식당 앞 장면이나, 몰려든 사람들 사이에서 은진이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고 홀로 남겨지는 장면이 그렇다. 흔히 이런 장면은 불편과 갈등을 자극적으로 묘사하곤 하지만, 영화는 달랐다. 계단 때문에 식당에 들어가지 못했으니 집에서 더 맛있게 먹으면 억울하지 않다며 남편과 함께 칼국수를 끓여 먹는 은진의 모습으로 전환한다. 장애로 인한 한계가 아닌 은진의 단단하고 긍정적인 내면이 부각된 것이다.
남편 역시 ‘장애인과 결혼한 천사’의 이미지로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의 역할에 충실한 부부로서, 특별한 강조나 과장이 없는 평범한 신혼의 일상을 보여준다. 영화는 ‘장애 여성의 임신’이라는 사회적 딜레마를 다루지만,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은진과 남편 호선(설정환 분)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는다. 극적인 사건 대신 인물의 내면과 관계의 미묘한 변화를 따라가는 감독의 섬세한 연출은 인상적이다. 임신으로 인한 몸의 변화, 출산을 앞두고 커져가는 불안,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남편의 걱정은 과장되지 않은 방식으로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무엇보다 주변 인물들이 장애를 동정하거나 희생으로 소비되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을 기반으로 함께 고민하는 평범한 가족으로 그려진 점이 특히 돋보인다.
여성과 몸, 재생산권에 대한 진지한 질문
영화를 보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영화가 정말 장애 여성의 임신과 출산을 다룬 작품이 맞나?” 장애가 잘 느껴지지 않을 만큼, 주제는 단순히 ‘장애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여성이 출산을 앞두고 마주하는 몸과 권리, 선택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태아의 이상이 의심돼 양수 검사를 권유받는 은진은 불안에 휩싸인다. 그때 산부인과 의사가 말한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에요. 조심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교통사고 같은 거죠.” 아이에게 생긴 문제가 은진의 장애나 약물 때문이 아님을, 그 어떤 부주의 때문이 아님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이는 모든 임산부가 겪는 불안이기도 하다. 임신 중 콜라 한 잔에도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임산부들의 보편적 경험이 아니던가.
감독은 처음에 임신한 장애 여성에 초점을 맞춰 자료조사를 했지만, 장애인 임신부에게만 나타나는 특별한 증상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임신으로 인한 몸의 변화와 심리적 불안은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보편적 경험이라는 것이다. 영화는 지후라는 인물을 통해 이 보편성을 확장한다. 지후는 같은 병실에서 만난 인물이자, 은진의 환상으로 등장하는 존재다. 노산임에도 태교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며 여유롭게 임신을 받아들이는 지후의 모습은 은진의 불안과 대비된다. 은진은 지후를 닮고 싶어 하고, 환상 속에서까지 그녀를 의지한다. 지후라는 인물은 장애 여성만의 이야기를 넘어 모든 여성의 이야기를 품게 만드는 장치로 작동한다.

새로운 질문을 시작하다
<우리 둘 사이에>는 우리 사회가 장애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던져온 편견적 질문들을 전복한다. 이제는 “아이를 낳을 수 있겠느냐”는 구태의연한 물음이 아니라,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한 사람으로서 존중받아야 마땅한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이 영화는 그 새로운 질문의 시작점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