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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간의 변화

“동환이는 아마 취업은 안 될 거고요.” 자폐성 장애가 있는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일 때 담임 선생님이 했던 말이다. 아들은 발달장애인 중에서도 소수에 속하는 최중증 장애인이다. 고등학생이지만 아직도 말을 못 하고 일상의 모든 활동에 ‘어른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런 아들을 보면서 나 역시 취업은 ‘먼 나라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혼자서 할 줄 아는 게 있어야 취업을 하지.” 취업은 우리와 상관없는 얘기였다. 취업은 경증의 세계, 장애 정도가 경한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처럼 느껴졌다. 적어도 7년 전까진 그랬단 뜻이다. 아들의 성인기가 3년 남은 지금, 내가 그리는 아들의 미래 모습은 사뭇 다르다. 눈 감으면 그려지는 10년 후 미래 속에서 아들은 어엿한 직장인이다. 직장 4대 보험이 되면서 아빠 밑에 이름을 올렸던 건강보험에서도 독립해 나갔다. 그동안 기적이 일어나 중하던 장애 정도가 갑자기 경해진 것도 아니다. 아들은 여전히 아들 그대로다. 하지만 2025년의 나는 아들의 취업을 꿈꾼다. 정책이 바뀌고 인식이 변한 덕이다. 중증의 장애가 있는 아들도 자립을 꿈꿀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립하는 삶이 만드는 가치

사람들이 묻곤 했다. 나중에 아들은 무엇을 하며 살게 할 거냐고. 아들과 쌍둥이인 비장애인 딸에 대해선 아무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자녀의 삶은 부모가 아닌 자녀 스스로 선택해 살아가는 거니까. 그런데 아들처럼 장애 정도가 중한 발달장애가 있을 경우엔 사정이 달랐다. 물론 아들의 취향과 선호도를 최대한 존중하겠지만 그럼에도 아들 삶의 방향성을 최종 선택하는 건 부모인 나의 책임이 된다. “글쎄, 무엇이든 아들이 좋아하는 활동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게 해야지.” 취업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아들이 좋아하는 활동으로 매일의 시간을 채우는 삶이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그럼에도 늘 마음 한쪽에 왠지 모를 무거움은 있었는데 말이 좋아 ‘좋아하는 활동’이지 사실상 놀고먹기만 하는 백수 상태로 성인기의 모든 삶을 보내겠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매일 놀고먹는 백수 시기가 있었다. 처음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자기효능감이 점점 사라져갔던 것이다. 사람이 자신에 대한 기대를 갖는 것, 본인 능력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다. 자기효능감이 있어야 삶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문제에 정면으로 맞설 용기가 생긴다. 비장애인은 흔히 직장생활을 통해 자기효능감을 쌓는다. 직장 내에서 인정받고 못 받고의 문제는 부차적이다. 내가 일한 대가로 다달이 받는 월급, 그 월급으로 당당하게 하는 작은 소비, 그런 것들이 알게 모르게 자기효능감을 높여 나간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좋아하는 활동만으로 꾸리는 삶’은 자기효능감이라는 부분에서 부족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들이 자랐다. 아들이 자라는 동안 정책의 방향성도 조금씩 바뀌어 갔다. 어느 순간부터 장애인의 자립이 장애계의 화두가 됐다. 아직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긴 하지만 중증 발달장애인도 자립해서 살 수 있는 정책(서울시 자립지원주택)이 만들어졌고 전국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 최근엔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주거전환지원법」도 국회를 통과했다. 아들은 내일 당장 자립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인즉슨 아들이 자립하게 될 10~20년 후엔 아들도 자립해서 살 수 있는 정책이 보다 공고히 구축돼 있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아들의 자립을 목표로 놓고 지금부터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아들이 어떤 형태로 자립해 살 수 있는 건지 알고 싶어 저마다 다른 지원주택을 여러 곳 방문해 살폈고, 자립하는 삶에서 필요한 요소들도 들여다봤다. 자립하는 삶에선 하루 4시간이라도 취업을 하는 게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발달장애인이 자립하기 위해서는, 비장애인만큼 많은 돈이 들진 않아도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했다. 장애연금과 수당만으로 사는 삶 보단 적은 금액이라도 스스로 버는 돈이 있어야 치킨 한 번이라도 더 배달시켜 먹고 외식 한 번이라도 더 할 수 있었다. 마침 근로지원인 제도가 생기면서 아들도 혼자만의 능력에 의해서가 아닌 타인의 지원을 받아 취업 활동을 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활동지원사의 지원을 받아 일상생활을 하고, 지원주택에선 주거코치와 코디네이터의 지원을 받으며 살고, 직장에선 근로지원인의 지원을 받는다면 아들의 성인기 삶은 엄마인 내가 없어도 암울하지 않을 수 있었다.
중증 발달장애인에게 취업은 상관없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도와 정책이 뒷받침되니 더는 상관없는 일이 아니게 됐다. 그러면서 엄마인 내 생각도 바뀌었다. 내 생각이 바뀌니 학령기인 아들을 양육하고 교육하는 데 있어서도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들이 자립해 살며 취업도 하는 미래에선 아들의 ‘능동성’이 너무나 중요할 테고 가족이 아닌 ‘타인과 어울려 사는 능력’도 반드시 갖춰져야 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서 지금 나는 학교에서의 교육도 이에 발맞춰 ‘참여’와 ‘사회성’에 비중을 둘 수 있도록 교사들과 상담하고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25년 전 나는 첫 월급을 받고 엄마에게 속옷을 선물했다. 첫 월급으로 부모님 속옷을 선물해야 복이 들어온다고 들었던 것 같다. 10년 뒤 미래엔 아들이 받은 첫 월급으로 나도 속옷을 선물 받을 수 있을까? 받아야겠다. 엄청 예쁜 꽃무늬가 있는 속옷을 선물 받고 여기저기 자랑을 하고 다녀야겠다. 그런 10년 뒤의 미래를 꿈꾸며, 아들과 함께 오늘도 하루를 살아나간다.